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말로 하기 싫은 일, 불편한 사람들과의 만남 등 이런 상황과 마주치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래서 이런 불편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토마스 무어는 그의 저서 ⟪영혼의 돌봄⟫에서 “불편함은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온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편함 자체가 사람을 온전하게 해주려는 영혼의 소리라는 것이지요.
사람은 부족한 것을 완전하게 채우도록 부름받은 존재가 아니라, 부족한 채로 일상생활에서 거룩함을 발견하도록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삶이란 어떤 인간적 감정으로부터 초월한 것으로 아는데 그런 경지의 사람은 아무도 없고,
설령 그런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일시적 착각이거나 자폐적 상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거룩한 삶이란 역설적으로 자신이 절대로 거룩하지 않음을 깨닫는 삶인데 이런 깨달음은 불편함 안에서 얻어집니다.
즉 거룩한 삶이란 거룩함과 세속성이 뒤섞인 상태라는 것입니다.
기도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느끼는 불편함 중에는 완전한 평화나 불편함이 없는 삶을 꿈꿔서 생기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앙의 강박증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고 쉬지 못하도록 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입니다.
가톨릭 수도원의 영성은 불편함의 영성입니다. 공동생활을 하며 불편함을 수용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가톨릭 영성이란 것입니다.
그러하니 기도를 해도 자신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고 시궁창 같더라도, 자신을 몰아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는 불평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 기분 풀이용, 이 중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기분 풀이용입니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불평, 소위 험담이라고 하는 불평은 너무 자주 하면 중독이 되지만 어느 정도는 속풀이 심리 치료 효과가 있기에 가끔 사용하는 것은 유용합니다.
두 번째는 유익한 불평입니다. 이 불평은 지금 고쳐지지 않는 점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의미합니다.
이런 불평은 논리적 근거가 있기에 듣는 사람들이 경청한다면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조직 내 아무런 불평이 없다면 그것은 그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는 조짐입니다.
세 번째 해로운 불평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평입니다. 이 불평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불평입니다. 이런 불평은 본인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불평은 바로 이런 해로운 불평을 말하는 것입니다. 살면서 불평한다는 것은 아직은 힘이 있다는 증거이기에 나쁘게 생각하기만 할 것도 아닙니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고 불평도 약에 쓸 때가 있으니 잘 사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 홍성남 님의⟪말해야 산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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