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우리말로 ‘친교’라고 자주 번역됩니다. ‘
친교’ 혹은 ‘사교’라는 단어는 일회적이고 단편적이며 피상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예배 끝나고 커피 한 잔 나누며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는 것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친교’라고 하지 않고 ‘교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교제’라는 말에는 핑크빛이 서려 있습니다. ‘이성 교제’를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
코이노니아’가 가지는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귐’이라는 번역이 참 좋습니다.
‘사귐’은 여러 가지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우선, ‘지속성’을 뜻합니다. 지속적으로 자주 만나야 사귀는 것입니다. 또한 ‘사귐’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전제합니다.
요즘 말로 ‘썸’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에게 끌려야 합니다. 사귐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서로에게 끌려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끝없이 지속하는 것이 사귐입니다.
시간에도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사귐의 영역에도 제한이 없습니다. 서로에게 매료되었기에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또한 모든 것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만일 어떤 영역이든 상대방에게 열지 않은 영역이 있다면 그 사람은 깊어질 수 없습니다. 사귐이 깊어질수록 관계의 중심이 나에게서 상대방으로 옮겨져 갑니다.
사귐이 깊어지면 헌신과 양보와 희생이 깊어져 갑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성경의 ‘코이노니아’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시작되고 깊어지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지 않아도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우리도 바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당신의 뜻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쓸 일은 다만 더 깊은 사귐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왜 일어납니까? 부부 관계를 망가뜨리는 환경적인 요인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사귐이 중단된 것 혹은 사귐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진정한 사귐이 지속되고 그로 인해 이심전심 통하게 되고 전인적으로 하나가 되면 환경적인 조건은 그 관계를 망가뜨릴 수 없습니다.
사귐은 없고 동거만 하면 깨어지기 쉽습니다. 부부 관계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대책은 부부 사이에 사랑의 사귐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영적 생활의 초점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사귐’에 집중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 김영봉 님의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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