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하루에도 몇 번씩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연락을 줍니다. 기도가 필요하다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좋은 일로 축복받고 싶어 하는 사람보다 상실감과 우울감 때문에 위로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위로에는 진심이 담겨야 하는데, 진심을 표현하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제가 자주 쓰는 한 가지 방법은 나의 약점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면을 먼저 드러내면서 세상 사는 동안 부끄러움은 늘 나의 몫이라고 말하고 나면, 상대방은 편안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합니다.
‘수녀님도 스스로를 부족하다 여기는구나’하는 안도감 같은 것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도자는 나와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비현실적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인간적인 갈등과 고민은 비슷하다는 걸 알고 위로를 받는 듯했습니다.
‘다들 사느라 힘드네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러봐야겠어요.’라며 돌아가는 이들을 보며 사실은 제가 더 위로를 받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설교하듯 교훈을 주려 한다면 쉽게 위로가 되지 않겠지요. ‘그쯤에서 그렇게 하신 것도 대단한 겁니다.
나 같으면 그렇게 못 했을지도 몰라요’라는 말을 진심으로 전하고, 상황에 대한 아픔을 공유하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신발을 바꿔 신는 연습’을 합니다. 상대방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에요.
상담을 전공하지 않아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만으로 위로가 됩니다.
수도 생활에서는 긴 시간 외부인과 만날 수 없을 때가 많아, 짧은 시간 동안 영성의 말씀들을 많이 이용하고 나눕니다.
작은 책자를 만들어 같이 읽기도 하고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 역시 수련과 이어집니다.
평소 ‘접인 춘풍 임기추상 接人春風 臨己秋霜’이란 말을 좋아하는데요, 다른 이를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나를 대할 때는 가을 서릿발처럼 엄격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위로는 거창할 수가 없어요. 위로는 모두 작습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헤아리며 겸손하게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나누는 데서 위로는 시작됩니다.
- 이해인 님의⟪인생의 열가지 생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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