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멈출 줄 아는 믿음”
2025-04-05 13:46:1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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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이 모압 왕 발락의 복채를 따라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귀를 통해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욕심에 사로잡힌 발람은 끝내 복채를 따라갔습니다. 이 발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민수기는 발람이 발락에게 가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않은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저주를 오히려 복으로 바꾸셨다고 말합니다(23:4-5).

여호수아서에서는 점쟁이 발람이 나중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처형당했다고 말하지요(13:22).

신약성서 베드로 후서와 유다서에서 발람은 불의한 삯을 사랑한 불의한 삯꾼 목자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벧후 2:15, 11)

발람은 왕실의 금과 은을 다 준다고 해도 하나님만 따른다면서도 정작 복채를 따라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삯꾼 목자의 모습이지요.

겉으로는 시뻘겋게 오직 예수라 외치면서 속으로는 새파랗게 오직 돈을 세습하는 삯꾼 목자들은 오늘 교회를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뜨리고 있습니까?

발람 이야기는 인간이 욕심에 빠지면, 한낱 나귀도 볼 수 있는 코앞에 들이닥친 위험도 보지 못한다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출 수 없다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령께서 막으셨을 때에 멈추었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을 때 무릎 꿇고 주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잘나가고 있는데 왜 멈추어야 하는지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가 가야 할 마케도니아에는 많은 어려움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진짜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즘 참 많은 교회가 혼란에 빠져 헤매고 있습니다. 특히 크게 성장한 교회들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그런데 왜 교회들이 그렇게 혼란에 빠지는 것일까요?

그 교회들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한 가지 공통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멈추어야 할 사람들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막으셔도 직진하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멈출 수 있겠습니까? 믿음은 몸을 불사르는 직진본능이 아니라 고요히 멈춤입니다.

멈출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신앙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중심인 십자가는 멈추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생각을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을 멈추고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께서는 자기 뜻을 꺾고 다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는 성령을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 우리가 멈출 수 있는, 진정한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재경 님의⟪아침마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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