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어머니가 저녁상을 차리시는데 명절 음식이란 건 아예 없다. 그냥 밥이랑 콩나물국이랑 반찬 몇 가지다. 대충 먹고 일어섰다.
자고 가면 안 되냐고 어머니가 물으시는데 다음에 또 오겠다면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문밖에까지 따라 나오신다.
이제 그만 들어가시라 하고 돌아서는데 어머니가 그러신다.
“미안해유!”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다.
홀로되신 어머니는 지금도 나만 보면 미안하단 말만 하신다. 사랑은 늘 미안한가 보다. 가진 것 다 주면서 더 주지 못해 미안하고 더 줄 수 없어 미안하다.
아무리 주어도 모자란 것 같은 마음, 끝이 없는 사랑, 다함 없는 사랑. 하나님 사랑이 이런 게 아닐까?
우리를 기르시려고 당신을 양식으로 내어 주시고 우리를 살리시려고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신다.
목숨이 다함으로 그 사랑이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 다시 사랑해 주신다.
‘돌아온 탕자’를 끌어안으시는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배은망덕에도 불구하고 조건 없이 사랑해 주신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무한정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이 같은 사랑을 본받는 것이 바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이웃 사랑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더 주지 못함에 미안하고 전해지지 못함에 안타깝고 받지 못함에 불쌍하고 주지 않음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 누구도 미안하지 않고 그 어떤 상황도 안타깝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 누구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 스스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랑이 메말라 ‘양심 불감증’에 걸린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들은 반지하 셋방에 살던 일가족이 빗물에 잠겨 죽어도, 꽃다운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선 채로 질식해 죽어도,
억압받는 노동자들이 부당함에 호소하며 스스로를 불태워도, 폭우로 잠긴 지하 차도에 갇혀 수많은 서민들이 참변을 당해도 언제나 무덤덤하다.
그들에게는 ‘나’와 ‘내 것’만이 존재할 뿐 내어 주고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세상은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고 불쌍히 여기고 부끄러워하는 이들 때문에 버틴다. 하늘은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악인 하나 때문에 더 기뻐한다.
하지만 세상은 힘 있는 악인 한 명의 회개보다 이제껏 희생해 온 의인들의 계속되는 희생 때문에 유지된다.
가만 보면 작은 것 하나라도 이웃에게 내어 줄 줄 아는 사람은 늘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4.16 노란 리본을 달던 사람들이 10.29 검은 리본도 단다. 그들은 모두 습관처럼 하나님과 이웃에게 미안해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살린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미안해유!”는 나와 세상을 살리는 말씀이었다.
김용태 님의⟪사랑은 늘 미안하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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