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나는 아니지요”
2025-02-15 13:09:07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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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름지기 성찰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찰의 끝, 그 완성은, 나 자신을 깨닫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듯 다 안다고 나대는데, 정작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답답하고 깜깜합니까.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너 자신을 알라고 했나 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말 아닐까요?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이 신앙의 길이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또한 나 자신을 아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차가운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놀랍고 두려운 깨달음의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리고 어쩌면 가장 깊은 깨달음, 근원적인 깨우침은, 내가 한 줌의 흙이라는 깨달음이 아닐까요?

신앙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자각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가 쓰레기요 먼지라는 깨달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우리를 기고만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고 무릎 꿇게 합니다.

시편 139편의 시인도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고, 샅샅이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되 속속들이, 내 오장육부에서부터 숨겨둔 마음 자락까지, 아니 내가 조성되기 전부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알 수 있는 것 그 이상으로, 하나님의 아심이 견줄 수 없이 깊고 높고 넓기에, 다만 놀랍고 두렵고 감사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다만 신비요 두려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슬기로우면 얼마나 슬기롭겠습니까.

내가 경건하면 또 얼마나 경건하겠습니까. 하나님의 크심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나 자신의 작음 또한 절절히 깨우치게 되는 것이지요.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돈을 받고 예수를 넘겨주기로 한 이야기에 바로 이어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월절 식탁에서 예수님은 나와 함께 이 대접에 손을 담근 사람이 나를 넘겨줄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때 유다가 반문합니다 선생님, 나는 아니지요?”

나는 아니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경고에 대한 유다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 유다뿐이겠습니까? 어쩌면 나는 아니다라는 이 반문은 모든 아담의 후예들이 했던 변명이요 반문인지 모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는 금지된 나무 열매를 먹었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먹었느냐?’고 물어오셨지요.

그때 아담은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여자 때문이라고 했지요. 나는 아니다는 말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을 때도, 여자는 뱀 때문이다고, 나는 아니다고 변명했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이 말, 참 무책임할 뿐 아니라 무서운 말입니다. 영혼 없는 말, 유체 이탈한 유령의 말, 죽은 자들의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말하였다!”

 

 

 

- 서재경 님의⟪아침마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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