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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감] 기도의 삶- 박인갑
2012-09-14 16:03:00
관리자
조회수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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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의 삶』을 읽고나서

제자반 : 박 인 갑

 

[기도의 삶]

 

‘기도의 삶’(헨리 나우웬)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갈망함에서, ‘더 내려놓음’(이용규)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에서,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빌 하이벨스)는 친밀한 교제를 위한 실천적 습관으로 기도함을 말한다.

 

진정한 기도는 기도를 꺼려하는 상황을 뒤집어 보면 알 수 있다. 기도하고 싶으나 왠지 맥이 풀리거나 결국 독백에 그치고 만다.

‘기도의 삶’의 책은 기도의 심층적인 심리와 기도의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살피게 한다. ‘연합에의 갈망’이나 ‘고독한 중에 들음’은 존재의미를 찾는 몸부림이요 그것이 기도임을 깨닫게 한다.

나의 경우 기도는 고독한 중에 할까? 아니면 쓸쓸한 마음에서 하게 될까? 고독은 자기 존재를 의식하나 혼자라는 환경에서 누구와 동화됨을 갈망함에서 온다. 그러나 쓸쓸함은 존재 의미마저 잃은 상실감에서 온다.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잃을 때에 오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에덴에서의 쉼을 아담이 무엇에서 잃게 되었는가를 거꾸로 찾아간다. 반항에서 순종으로, 허무에서 충만으로, 독립에서 의존으로, 자기 존재만을 찾는데서 연합의 공동체를 찾아간다.

헨리 나우웬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한다. “우리가 진정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대답하기를 ‘연합’이라고 대답한다. ‘연합’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 됨’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덧붙여 설명하기를, “예수님은 우리의 연합의 갈망이 헛된 것이 아니라 그 갈망을 심어주신 분을 통해 채워진다는 것을 선포하러 오셨다.”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합하고자 하는 갈망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까지 확언한다. 그의 그러한 확언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으로서 모든 피조물에서 통일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자 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창조의 날에서 둘째 날을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없고 나눔만 있음으로 인해 그 날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허나 기도의 삶을 읽는 중에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흑암과 빛, 낮과 밤, 물과 물, 뭍과 바다, 하늘과 땅, 각기 종류대로 만드시되, 아담의 살과 뼈로 특별한 이브가 생기기까지 한 존재만을 만드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것이 그 하나하나가 보배롭고 존귀하며 각각의 위치에서 아름다웠다.

[용서의 의미도 생각하여 보면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존귀한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의의 성취를 위해 사랑으로서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기도의 삶’을 읽는 중에 그가 말하는 연합의 의미가 새로웠다. 이 나눔은 존재의 순수한 보배로운 특성을 각기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닫는다. 그 존재들이 각기의 주신 은총을 잊고 자신의 존재만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도리어 존재케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려 스스로 존재의미를 상실한다.(일반적인 말로 한다면 관계의 질서를 깨뜨림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떨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게지, 내 마음이 하고 싶지 않으면 할 수 없잖아?”

“쓸쓸하고 외롭고 모든 것이 지나고 나니 허사야. 내가 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난 할 만큼 했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헛된 마음과 기도할 수 없는 상태나 하나님과의 연합되지 못한 모습을 ‘더 내려놓음’은 지적하여 준다.

기도의 핵심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에 있다고 말한다. (통보식 기도를 하거나, 행하지 않거나, 내 능력 밖의 일이라 하여 안 들으려 한다.)

변화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건만 하나님 없이 내가 스스로 변화하려고 한다. 정확한 자기 실체를, 혹은 자기 능력을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자기 집착에 빠져 버린다. 첫째로 자존심이 상한다.(이러한 상태가 바로 하나님을 거부하며 반항함이며 하나님과 연합됨을 스스로 파기하는 죄성이 있다.) 그래서 자기 신분에 대해 내 능력 밖의 무거운 책임을 지고 헛되이 힘을 쓴다. 그 결과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권위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반항에 의해, 무능한 자기 형편에 대해서는 분노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무시당함을 분하여 한다. 곧 하나님의 다스림에 거스르는 본성이 내 안에 있음으로 기도함이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지 못하여 겉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를 보면 우리의 존귀성을 하나님을 통해 깨닫는다”라고 대답한다. 나를 나라는 존재로서 보시는 하나님의 기대는 ‘지금은 모자라지만 향후 변화된 보배로운 모습으로 보신다’는 것이다. 결론하여 우리의 삶이 자아실현을 위함인지 하나님이 거룩과 영광을 위함인지에 따라 우리의 기도는 살아 있는 교제가 되거나 죽은 교제가 된다고 본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어둠의 마음은 자율성과 자립심으로 인한 반항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다’라고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는 대답한다. 사실 편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함은 내 할 일과 하나님이 해주셨으면 하는 일을 내가 판단하여 내가 정하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질적인 변화가 내게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아바, 아버지”

조금 나아간다 해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구하는가?” 실천사항을 놓고 나는 내 안에서 잣대를 재고 있는 나를 본다.

구하는 것에는 내가 행하여야 할 것이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지 않는 명령을 하실까봐 전전긍긍하므로 추상적인 내용만 기도한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항상 지내게 해주세요.”

어쩌면 나는 동문서답식으로 기도하는지 모른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나를 데려다 줄 사람이 없네요.”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이러한 내게 저자는 경고한다.

경고1. “의무감을 버리고 자유함으로 기도하라”

경고2. “자기 기만을 버리고 결단하라.”

 

 

[더 내려놓음]

‘내려놓기’는커녕 ‘내어 놓지도’ 못하는 나의 상태이다.

언제쯤이나 나는 삶의 상태를 직시하고 하나님을 인식하는 중에 참다운 기도를 할 수 있을까?

나는 20년이란 세월을 아내와 대화로 풀지 못하고 서로 지친 상태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 날 아내는 쪽지를 내 방에 두었다. “혼자 나가 자유롭게 사세요. 안보고 살면 서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 이후 어머니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7년 만에 잠시 만나, 다 성장한 아이들을 ‘이제는 다 컸구나.’ 하며 바라보았을 뿐이다. 나를 측은히 여기는 분들은 나의 아내와 아들들을 무심하다 하지만, 실상은 무능하고 무관심한 나를 징책하시는 결과로 현 상황을 의식한다. 이제는 내가 다시 화합의 손을 내밀 수 없음이 구차한 모습으로 추하게 느껴서이다. 그러므로 내 아내나 아들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나를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을 제하여 주시고 사랑받지 못한 사랑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길 간구한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책임을 하나님께 떠맡기는 것 같아 괴로워서 한편으로는 이 모든 관계를 잊으려한다. 내 안의 갈등은 사랑함이 없는 나를 봄으로 인해서이다. 그러하니 그러한 나를 사랑으로 감싸신 이(하나님과 가족들)의 아픔은 어떠하실까? 떠나던 날 꿈 속의 어떤 말이 떠오른다. “너를 아프게 한 사람은 너보다 더 아파해 한다.” 연합이나 사랑이나 용서에 관한 글들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심히 짓누른다. “한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리라”는 주님의 준엄한 말씀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늙었고 아내도 늙게 되었다. 아이들은 갈등 속의 부모를 보며 자랐으며 항상 주변에서 맴돌다 떠난 아빠임을 안다. 그러므로 이제 내게 삶을 남겨 주신 것은 이러한 불행에 대해 경고케 하는 표적으로 이해한다. 누구를 만나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숨겨놓으신 보배를 주셨답니다. 그것을 본인이나 다른 모두가 깨달아 알기를 원하실 것입니다.”라는 고백이다.

이 날에 할 수 있는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용서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징치하심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즐거워할 것이다. 혼돈의 삶 중에 할 수 있는 것은 질서의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위에 계신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도 아시는 분이시다. “주님, 오늘도 한걸음 나아갑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사 내 안에 내어놓아 드리지 못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어놓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첨언: 가족에 대해서는 어제 교회에서 큐티를 하는 중에 깨달은 것이 있었다. 비록 만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들을 위해 나의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것이 나 혼자 지는 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신다는 뜻임을. 왜 무거운 짐을 혼자 지려고 했던가? 하나님께서는 내게 구하라 하셨으며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연유로 해결 할 수 없는 관계를 혼자 끙끙 앓고만 있었을까? 나는 비록 사랑이 없는 아비요 남편이지만, 이런 나를 사랑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의탁함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것은 하나님께 내가 해야 할 책임을 떠맡김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 의탁함으로 하나님이 함께 짐을 져주신다는 뜻에 나를 맡김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날에 나는 만날 수 없고 무엇 하나 해줄 수 없는 나의 처지이지만 내가 주지 못한 사랑을 그들을 위해 날마다 간구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덧붙여 나의 미약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구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분명 그들을 사랑의 품인 당신의 품에 안아 주실 것이다. 나는 다만 기도할 뿐이지만 하나님은 나의 진심을 받아 주심으로 그들을 사랑하여 주실 것이다. 이제는 이 삼십년의 고민을 떨어 버리며 죄책감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련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하나님이 사랑의 품에 들어가 살기를 간구함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길임을 믿는다-12.9.14

 

네가 아름다움은 내게서 나누임이라. 모든 것을 창조하시되

모든 것을 나누신 이를 하나 같이 아름답게 하신 이를

오직 하나님을 향해 이를 나타내는 각각의 순수함으로

찬양하자 찬양하자 우리 함께 찬양하자

네가 더욱 아름다움은 우리는 연합함이라

몸은 나뉘었으나 영혼은 하나라.

너와 나는 순전함으로 혼돈에서 벗어났고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공허에서 자유롭다.

오라 하나님의 영이 물위에 충만하시며

우리로 각기 빛난 특성을 비추게 하신다.

이는 어우러진 충만함이라 나눠주신 은총이요

베푸시는 은혜러라.

오, 빛이여, 또한 흑암이여

있음대로 있게 하심이여

아름답게 빚으시며 존재케 하여 주시는 이

창조주 안에 우리는 하나 되어

신비롭고 영화로운 주님의 행하심을

찬양하자 찬양하자 우리 모두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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